글로벌 컨텐츠는 창작자 혼자서 만들 수 없다 (ft. 케이팝 데몬 헌터스)
- NSN 이야기꾼

- 8월 16일
- 6분 분량
최종 수정일: 8월 19일
본문 요약
한국 영화·드라마 산업은 OTT 플랫폼 의존도가 심화되면서 중저예산 영화와 전통적 제작 시스템이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창작자 개개인의 역량은 충분하지만, 체계적 시스템과 IP를 소유할 구조가 부재해 지속 가능한 집단적 창작 환경을 만들지 못했다. 결국 필요한 것은 자본의 크기가 아니라, 창작자가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시스템과 “그것도 할 수 있다”는 태도를 키우는 일이다. 유투브는 혼자 만들 수 있지만 케이팝데몬헌터스는 혼자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왜 OTT가 아니면 영화가 없게 되었을까 -하청의 현실
요즘 제일 많이 듣는 말이 “OTT 작품 아니면 영화가 없다”는 거다. 사실이다. 국내 콘텐츠 투자 시장에서 중저예산 영화는 여전히 만들어지지만 노동 시장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 글로벌 네임이 있지 않다면 아예 투자 자체가 어렵다. 이창동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준비하던 작품이 영진위 ‘중예산 제작지원사업’에 선정됐음에도, 결국 신청을 취하하고 넷플릭스로 향했다. 더 조건이 좋고, 손해 볼 일이 없기 때문이다.

드라마도 크게 다르지 않다. OTT 드라마는 영화 못지않게 충분한 예산과 시간을 들이지만, OTT 외 국내 제작 환경은 여전히 주먹구구식이다. 빠듯한 예산, 빡빡한 일정, 바뀌지 않는 구조. 사람들은 “이게 한국의 경쟁력”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일을 많이 잘 한다고 해서 제작 환경이 좋아지지 않는다는 아이러니를 낳는다. 일이 '주어져야 하고' 또 일을 급급하게 해내기 바쁘다. 시장은 커져도 정작 그 혜택이 소수를 넘어서 시스템으로 쉽게 발전하지 않는다. OTT와 유튜브가 유통을 독점하는 시대에 누구나 글로벌로 콘텐츠를 수출할 수가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 장벽은 높고 한국은 개인 참여자로는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구조로 움직이는 단체전에서는 그리 효과적이지 못하다. 그 결과가 지속가능하지 않은 지금의 영화 시장이 아닌가 싶다.
제한된 환경에서 나오는 창작물. 혼자 만들지 않는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몬)는 전 세계적으로 성공했다. 창작물이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제목만 K-POP이지, 한국은 거의 관여하지 않았다. 오징어게임도 IP는 넷플릭스가 다 갖게 되었지만 그래도 감독과 스태프, 현장 모두 한국에서 만들어졌다. 케데몬은 감독도, 제작도, 스태프도 모두 한국인이 아니어서 가능했던 것일까. '한국계' 인재들이 많았다는 점을 우린 잘 생각해봐야 한다(백남준이 떠오른다). 감독인 매기강은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일찍이 이민을 가 캐나다에서 성장했고 드림웍스에서 〈슈렉 포에버 애프터>,〈마다가스카>,〈가디언즈>,〈쿵푸팬더3>, <크루즈 패밀리>,<트롤> 의 스토리 아티스트(story artist)로 탄탄한 경력을 쌓았다.

헐리우드의 자본과 인재 시스템은 절대 대체 불가하다. 무한한 자본과 오랫동안 인재들이 일하고 싶은 환경을 만들었다. 그래도 체념하고 낙담할 일은 전혀 없다. 변하지 않는 사실이자 한국이(또는 어느 나라도) 경쟁력을 갖고 있는 것은 역시나 '스토리 텔러' 혹은 창작자의 힘이다. 소수의 뛰어난 창작자가 존재하고 그들은 인류를 움직일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런데 소수의 뛰어난 창작자가 나오려면 다수의 창작자가 열심히 활동하고 경력을 쌓을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을 뒷받침 할 수 있는 제작 시스템은 당연하다. 진짜 단체전이다. 우린 과연 그런 시스템을 갖고 있을까? 그게 단순히 '우린 헐리우드처럼 자본이 없어서야'라고 핑계를 댈 수 있는 문제일까? 거대한 제작비로도 산으로 가는 작품들을 우린 무수히 보았다. 스티브 잡스는 진정한 창작은 제한속에서 나온다("Creativity comes from constraints.”)고 했다. 헐리우드는 생각보다 더 철저하게 시스템과 메뉴얼로 움직인다. 끊임없이 좋은 창작자가 발현할 수 있는 시스템을 추구하지(그래야 시장을 유지하니까) 몇 명의 감 좋은 사람이 잘해주기만을 바라지 않는다.

김도훈 칼럼니스트는 이렇게 말한다.
“한국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만들 수 없었다. 만들 수 없다. 앞으로도 만들 수 없을 것이다. 누군가는 구멍 뚫린 한국적 아이피의 혼문을 새로 세워야 한다. 한철 장사밖에 모르는 콘텐츠 저승사자만 너무 많다.”
동의하는 부분도 있긴 하지만 김도훈씨도 결국 어떻게 하자고 하진 않는다. 그만큼 말만 하는 비평은 쉽다.
말은 쉬우니까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말을 얹어보자.
컨텐츠 시장에서 한국인은 만들어내는(노동하는) 플레이어로는 잘하지만 시스템을 운영하고 IP를 가질 수 있는 힘을 확보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인은 충분히 창의적인데 왜 그런 부분에선 창의적이지 못했을까?
개인 경쟁이 아닌 단체 경쟁
단기 성과와 주먹구구식 버티기만 반복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빠른 성장을 해야했기에 그게 최선이었을 수도 있다. 과거가 어떠하였든 앞으로 이 시장에서 힘을 갖는 창작자 집단이 되려면 앞으로는 창작물에 대한 철학이 바뀌어야할 때가 온 것일 수 있다.

분명 한국은 스토리 측면에서 저력이 있다. 전세계에서 국민 수 대비 유투버가 제일 많은 나라다. 모바일로 컨텐츠를 소비하는 비율도 가장 높고 단기간에 전세계에 영향을 가져온 K 컬처가 존재한다. 조선시대에는 누가 누가 시를 잘 쓰나로 양반이 되었었다. 한국은 그만큼 이야기를 중요시 해왔다. 급격한 경제민주화와 불안정한 정치 국면에서 우리는 어떤 철학을 품고 이야기를 계승해왔을까? 개개인 역량은 뛰어난데 함께 만들고 자원을 배분하는 시스템은 잘 만들지 못한다. 경쟁적 입시 시스템부터 창작자 도제 시스템까지 K 컬처 이면에 있는 K 창작자 양성 시스템은 최선일까? 지금 사회는 원래 타고난 창의적 방식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그걸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게 할 수 있을지 최선을 다해 고민한 시스템만 같다.

백남준 예술가는 코리아가 대체 무엇인지 세계가 잘 알지 못하던 때 한국인은 창조적인 민족이며 언젠간 그 빛을 발할 때가 있을거라며 긍지를 보였었다. 한국을 일찍 떠났기에 오히려 한국인의 순수성을 더 잘 보전하는 고전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국뽕은 차치하더라도 한국인의 민족성은 분명히 존재하고 우리의 한이 담긴 역사와 투지, 경쟁 시스템, 단일성 등등은 지금의 케이팝을 만들어낸 것이 맞다. 우리가 보기엔 당연한 것도 외부인이 보기엔 너무도 놀라운 것이 많다. 케데몬의 감독도, 제작도, 스태프도 모두 외부인이였기에 가능한 작품이었다. 한국은 다른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할 때가 아닐까.

심리학자 JP 길퍼드는 1950년대에 기존에 IQ처럼 하나의 정답을 찾는 수렴적 사고(Convergent Thinking)가 아니라 유창성·융통성·독창성·정교성을 특징으로 하는 확산적 사고(Divergent Thinking)가 창의성을 발휘한다고 밝혔다. 이미 우리는 당연하게 알고 있지만 막상 현실에선 생각보다 잘 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케데몬이 케이팝이 사실은 오랫동안 계승되어온 한국 여성의 '한'이라는 스토리를 엮어낸 것 처럼 말이다. 사고를 확장시키려는 자연스러운 노력에서 나온 결과라고 생각한다.
혹자들은 케데몬의 파급력이 오징어게임을 넘어섰고 더 오래갈 것이라고 전망한다. 동의하는 바인데 그 이유는 케이팝데몬헌터스의 긍정적인 스토리다. 오징어게임은 더없이 참담한 현실을 극적으로 담은 것에 비해 이번 넷플릭스 신작 애니메이션은 서구가 전통적으로 잘 다루는 긍정적 가치와 희망을 담았다. 물론 서구의 무조건적인 긍정주의는 불편할 때도 있지만 여러모로 확산되기가 더 쉽다. 문화 컨텐츠 소비 시장은 여성이 주도하고 있으며 매기 강 감독 또한 이 점을 분명히 인지하고 여성에게 매력적인 서사를 매력적인 비주얼로 담아내었다고 밝혔다. 한국의 작가들이 거의 대부분 여성이라는 것은 이미 너무도 익숙한 사실이다.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 애니메이션이 흥해도 세트는 계속 필요하다
세트 회사는 작품의 흥행과 무관하다. 콘텐츠가 많이 제작되면 일이 많고, 없으면 일이 없다. 참여한 작품이 잘 돼도 추가 수익이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영속하기 위해선 시장이 성장해야 하고 가치가 적절히 분배되어야 한다.
영상물은 현재 인류에게 가장 확산이 빠르고 매력적인 매개체인데 영상물의 장르는 기복이 있다. 요즘은 국내 영화는 적고 뮤직비디오가 상대적으로 많다. 처음 뮤직비디오 세트 시장이 생겼을 땐 세트비가 몇 백만원이었지만 이젠 왠만하게 힘주는 건 억 단위가 기본이다. 시장이 몇 백배는 커졌기에 당연하다. 줄어들 것 같다가도 계속 반등한다. 케데몬의 성공이 뮤직비디오 시장을 더 키울 수도 있다. 해외 스타들이 한국에서 촬영을 하거나, 국내 감독과 스태프가 해외로 나가는 경우가 늘어날 것이다.

“AI 때문에 세트가 사라지지 않겠냐”는 말도 많지만, 동의하지 않는다. 사람은 여전히 공간에서 일한다. 같이 합을 맞추고 공기를 느끼는 환경이 필요하다. 시장이 커지는 한 세트 수요는 사라지지 않는다. 자본이 무한대라고 할 수 있는 할리우드와 중국 시장에서 세트는 점점 커지고 있다. 게다가 스타들의 몸값은 이미 기하급수적으로 올랐다. 반면 다른 예산은 크게 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세트비용을 아낀다고 해도 큰 의미가 없다. 오히려 세트는 늘 일정하게 들어가는 비용이라 시장이 커지면 함께 커진다. 공간의 감성을 대체할 수 없는건 아직까지 없다. 버추얼 공간이 많아질수록 진짜 공간에 대한 수요는 어떻게 될까? 이건 오히려 희망적인 부분이다. 사람이 창작하고 사람이 제작한다. AI를 사용하는 것도 사람이다. 그러니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그럼 애니메이션 세트 디자인은 뭐가 다를까?

프로덕션 디자이너 헬렌 첸은 “최고의 세트는 관객이 세트를 의식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애니메이션의 프로덕션 디자인도 실사와 다르지 않다. 다만 자재나 물리 법칙은 무시해도 되니 스토리와 연출이 더 우선시 된다.
데이브 블라이히(프로덕션 디자이너)와 웬델 달리트(아트 디렉터)는 이번 작품을 “뮤지컬처럼 미술을 설계했다”고 말한다. 음악 프로듀서와의 긴밀한 협업, 전통적 모티프와 현대 K-POP의 에너지를 시각적으로 연결한 시도. 전통 한국인이 아니어도 충분히 한국 이야기를 전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고 그걸 믿어준 시스템과 사람들이 있었다.
흥미롭다.
이미 정해진 방법으론 창조 할 수 없다
케데몬은 좋은 콘텐츠다. 기대하지 않고 봤는데 압도당했다는 사람들이 많다.


케데몬을 가능하게 하는 건 시스템일까 뛰어난 소수의 개인일까? 다 중요하겠지만 좋은 걸 알아볼 줄 아는 리더, 소통할 수 있는 실무자, 역할이 분명하게 나뉜 조직, 충분한 시간과 예산. 이 모든게 창의성이 발휘되는 환경이다. 단순히 예산을 늘리고 유명한 스태프를 쓰는게 답이 아니다. 김도훈 칼럼니스트가 말하듯 어느 젊은 애니메이션 감독이 케데몬을 한국 제작사와 투자자에게 어필했다면 '그건 안된다'라고 짐짓 나이 많은 남성 임원들이 거절하지 않았을까? 프로덕션 디자이너 2명과 아트 디렉터 4명이 함께 한 작품에 일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한국에서 가능할까?

'그건 안된다'에서 '그것도 할 수 있다'로 가려면 무엇을 포기해야 할까?
케데몬은 한국이 만들지 않았지만, 한국엔 기회다. 자본가의 위치는 아직까진 놓쳤지만, 배울 건 많다. 언젠가 할리우드 스태프가 한국에 와서 뮤비를 찍을 날도 올 거다.(이미 일본은 한국에 많이 오고 있다) 그때는 지금보다 지속가능한 환경이 만들어져 있을 거라 믿는다. 결국 답은 단순하다. 좋은 걸 만드는 힘. 다수를 희생시켜 소수를 만드는 구조가 아닌 다수가 자연스레 창작하는 시스템. 나이, 연령, 인종, 성별, 학력과 같은 창작과는 관련이 적은 조건을 내려놓고 좋은 걸 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하는 용기, 불필요한 의전이나 형식이 아니라 본질에 집중하는 것. 지금의 대기업이 모든 분야를 인수해 소수가 결정해가는 게 아니라 각 전문 영역이 있는 크고 작은 회사들이 더 자유롭게 시장에서 활동해야 한다. 그래야 “그것도 할 수 있다”는 말이 자연스럽지 않을까.
인류의 문화가 섞이고 서로 영향을 받아 창작자들이 가치를 만들어내는 작업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고 부가가치가 커졌다. 동시에 부가가치가 소수에게 귀속되는 편향이 강하지만 생각해보면 그건 항상 그렇긴 했다.
최근 한 지인과의 대화에서 압도적인 역량을 가진 창작자이지만 사회성도 떨어지고 시간도 지키지 않는 사람과 일하는 것과 창작자로서의 역량은 뛰어나진 않지만 그 외 모든 면이 일하기 편한 창작자중 누구와 일할 것이냐는 주제로 이야기했다. 둘 다 결국은 전자를 선택할 것 같다고 했다.
뛰어난 것은 말 그대로 귀하다. 뛰어난 것은 다수가 지속가능하게 버텨주지 않으면 나올 수 없다. 좋은 스토리를 가진 개인이 국내 제작 시스템이 아니라 해외에 계속 유출되지 않으려면 단체전을 더 잘해야 한다.
포기할 것은 분명 있다. 그게 안되는 이유기도 하다.
말은 쉽다. 그러니 우리부터 잘하면 된다.
![[편지05] 더 깊은 우물을 위하여](https://static.wixstatic.com/media/a4328a_daf1de9a22fb49398bedcaaa2c8f77b7~mv2.png/v1/fill/w_469,h_457,al_c,q_85,enc_avif,quality_auto/a4328a_daf1de9a22fb49398bedcaaa2c8f77b7~mv2.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