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워도 주저앉지 않는 바톤 이야기🛠️ - ft.서강득 기사
- NSN 이야기꾼

- 5일 전
- 3분 분량
모터,전선,쇠파이프,작업에 대하여.
대다수 사람들이 살면서 바톤이라는 말을 들어본 상황은 이어달리기 바톤 터치!가 아닐까. 세트장이 익숙한 이는 다른 바톤이 떠오르지만 말이다. 육상경기 바톤(baton)과 한국 표기명은 같지만 영문 표기명도 다르고 사용법도 다른 바톤(batton)이야기다. 세트장 천장을 오르락 내리락 하며 수 백킬로의 무게를 지탱하는 바톤 장비 이야기에는 수 백 명의 이야기가 들어갈 수도 있지만 이 글의 주인공은 한 명이다.

바톤이 뭐길래?
바톤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다. 영상물이 생겨나기 훨씬 전 무대 공연이 있었던 18세기 시절 극장 천장의
초나 기름 램프를 달기 위해 만들어졌다. 물론,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모터식의 바톤이 아니라 천장에 고정형이나 밧줄을 매단 식이었다. 더 좋은 창작물을 만들고 싶은 마음은 19세기 무대 기술자들이 만든 도르래와 밧줄로 만든 플라이어 시스템으로 이어져 훨씬 다양한 구조물을 시시각각 올렸다 내렸다 할 수 있게 되었다.

또 100년 남짓이 흘러 코레아에도 1970년대부터 KBS, MC방송국, 세종문화회관들이 생겨나면서 플라이어 시스템이 영상 제작소에 들어서게 되었다. 손으로 올렸다 내렸다 하니 전완근은 강해졌지만 여간 불편한게 아니었다. 그래서 전자 ‘모터식’ 바톤이 아시안게임(1986), 올림픽(1988) 이후 더욱 활발히 개방된 시장을 통해서 도입되었다.
2000년이 밝아오면서 방송국 모터식 바톤은 민간 세트장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믿거나 말거나, 이 작업을 처음 활발히 진행한 사람이 바로 30년 세트장 바톤 경력을 쌓아온 서강득 기사님이다.

서 기사님은 69년생으로 전자공학과를 나왔다. 일이 있는 곳은 어디든 갔는데 주로 나이트클럽 전기 작업을 많이 했다. 무대 행사시 바톤 작업이 진행되는 것을 보고 ‘이거 잘 되겠다’ 라는 생각으로 세트장 바톤일에 뛰어들었다. 아무도 가르쳐주진 않았지만 빠르게 습득해 바로 현장을 맡았다. 외지 창고를 개조해 만들어졌던 허름한 세트장에 모터식 바톤 공사를 진행하는 모습을 떠올려보자. 세트장 위쪽에 그나마 있는 빔 구조물을 디디며 하나씩 바톤과 바톤 봉을 설치해야 했다. 캣워크라는 구조물이 있는 곳이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없던 곳도 많다.

당시에는 유투브도 없었고 세트장에 바톤을 전문적으로 달았던 이력도 없었다. 바톤에 대해 잘 모르는 세트장 사람들을 전선 단위로 설득해 작업을 하는 건 여간 쉽지 않았다. 어쨌든 서기사님은 술을 많이 드셨고 종종 작업을 하다 캣워크서 취해 잠들기도 했다. 지지리도 욕을 많이 먹었다.
기본적으로 전기공은 기억력, 민첩성, 섬세함이 뛰어나야 한다. 서기사님은 본인이 작업한 모든 세트장의 구조와 전선을 기억한다. 함께 한 이들은 모두 입을 모아 그의 영특함과 꼼꼼함을 칭찬한다. 취해있었지만 작업은 완벽한 그였다. 바톤 전문 업체가 늘어났지만 아직도 개인 단위로 움직이는 서기사님 휴대폰은 조용할 날이 없다.

모터를 단 스튜디오
스튜디오 업은 모터를 달며 성행했다. 한국 영화가 본격적으로 위상이 높아질 시기인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에는 스튜디오 협회가 있었을 정도로 업계서 위상이 높았고 영세한 촬영팀은 어떻게든 세트장 인원과 일정과 견적을 조율해야만 했다. 이제 바톤까지 달렸으니 영화 촬영은 더욱 속도를 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제 모터 바톤은 세트장의 필수품이 되었고 수없이 많은 지붕과 조명을 달아내었다. 무대 조명이 추락해 사고가 났다는 기사를 어디선가 본 적이 있지 않은가? 서기사님이 작업한 바톤은 사고를 낸 적이 없다.

위 사진 처럼 바톤은 세트 구조물- 특히 지붕 -을 메다는데 주로 사용되고 또 조명팀이 애용하기도 한다.바톤 마다 5~8개 정도의 조명 콘센트가 있어 각기 조명을 달 수 있다. 때론 미술팀이 소품을 메달기도 한다. 단순한 봉과 모터 구조이지만 상상력이 더해지면 그 용도는 무궁무진하다.

요즈음 바톤 한 세트를 구매하고 설치하려면 대략 1,000만원 이 든다고 한다. 500평 세트장 기준 최소 20개 정도는 바톤 세트가 필요하니 천장에만 2억 원 정도를 메다는 셈이다. (가끔 고정형으로 파이프만 있는 세트장이 있는데 이곳에 가면 일단 스태프들은 한 숨 크게 쉬고 일을 시작한다) 모터 기술은 조금 더 좋아지고 전선관도 금속관으로 바뀌어 안전해졌지만 본질은 여전히 같다. 하중을 견디고 언제든 올라갔다가 내려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내려놓다
서강득 님은 말했다. 잘 관리하면 바톤 모터는 평생 쓸 수도 있다고. 실제로 남아미술센터에서 사용되는 바톤은 10년이 넘게 사용했지만 아직 짱짱하다. 사실 기회가 될 때마다 먼지를 잘 털어지고 기름칠을 해주면 상태가 더 좋았을 텐데 그렇게 하진 못하였다. 평상시에 잘하기란 역시 쉽지 않을걸까.
남아의 임송 세트장을 철거하면서 바톤들이 아까워졌다. 고물상에 넘기자니 시원섭섭하여 방법을 궁리하던중 MOU를 맺고 있는 한예종 대학교가 생각났다.

한예종은(혹은 모든 공공기관은) 언제나 예산이 부족하다. 그래서 영화과 스튜디오는 강산이 몇 번 변해도 바톤 없이 밧줄 시스템으로 천장에 구조물과 조명을 매달아왔다. 국내 최고 예술 대학이 조금 아쉽다. 이왕 바톤을 철거하는 김에 한예종에 기증하는 방법을 찾아보았고 이 작업도 서기사님에게 자문을 받았다. 돈도 안되는 일이라 투덜대셨지만 10일 가까이 시간을 들여 세트장 바톤을 고이고이 철거해주셨다. 남은 기증 작업이 잘 진행되어 영화를 꿈꾸는 이들이 걸고 싶은 만큼 믿고 걸 수 있는 바톤이 새로운 공간에 완성되길 바란다.


두 아들을 든든히 키워낸 서강득 기사님은 일이 없는 날에도 그의 큰 SUV 트렁크를 장비로 가득 채우고 전국 세트장을 돌아다니신다. 어디 세트에서 어떤 일이 있는지 모르는 게 없으시다. 말투가 재밌으신데 이 글에는 담지 못해 아쉽다.
최근 몸이 크게 아프셨다. 이제 일을 못한다고(혹은 술 못 마신다고) 백수가 되었다고 웃으며 통화를 하셨다. 그래도 그는 지금도 어디선가 세트장 전기작업을 하고 있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그가 이곳을 떠날 수 있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서기사님의 손을 거친 세트장보다 그렇지 않은 세트장이 늘어날 것이다. 그렇지만 대체할 수 없는 그의 정신은 남아서 견디고 지켜내주고 있다.

서강득씨는 2000년대 초반 세트장 바톤 작업을 고 노인택 남아 창업주와 함께했고 2025년 남아미술센터의 임송 세트장 바톤을 철거했다.
